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운주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[[고창 전투]]의 대승 이후 고려-[[신라/후삼국시대|신라]]연합은 다시금 삼한 통일 경쟁에서 우위에 서며 후백제를 조여오기 시작한다. 이에 후백제는 어려움을 극복해보고자 수군을 동원하여 [[예성강 전투]]를 개시, 고려의 수군 전력을 약화시키고 일시적으로 눌렸던 기세를 푸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지만 왕건의 제거라는 소기의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. 결정적으로 934년 7월경 쯤 멸망한 옛 [[발해]]의 태자 [[대광현]]을 비롯한 잔존 왕족과 대신들의 귀부를 받아들이며 인적인 [[스펙트럼]]을 넓혀가고 있었다.[* 이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고위 인사들의 귀부에 대해 고려사는 934년 7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[[고려사절요]]는 925년 12월이라 말하고 있으며 [[동국통감]]에는 926년 1월의 일로 적혀 있다. 학계에서는 이 동국통감의 기록 쪽을 더 신뢰하여 926년 1월 이후 고려 쪽에 편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. 한편 931년 이후의 신라는 보호국 이런 수준이 아니라 그냥 고려의 신하국이었다. 이 시기로부터 500년 전 고려 군주 장수왕과 신라 군주 실성, 눌지 마립간 등이 맺었던 관계가 완벽히 똑같은 형태로 부활하고 만 것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